프란츠가 알터를 찾아오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났다. 알터가 궁금증을 가진 것은 그쯤이다.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에 마냥 기뻐할 때가 지났을 시점이었다. 프란츠는 이곳에 들어선 이후 알터의 안부를 물은 뒤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책상 앞에 놓인 소파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시간을 때우는 것이 전부였다. 가끔 어떤 시선을 느껴 고개를 들었을 때 눈이 몇 번 마주친 것 말고는 알터를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시간을 정해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때는 새벽에, 어느 때는 점심에, 또 어느 때는 저녁노을이 질 때 그를 찾아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언제 찾아왔냐는 듯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날은 새벽이었다. 인기척에 돌연 눈을 떴을 때 알터는 당연하다는 듯 서 있는 프란츠와 눈이 마주쳤다. 알터는 기겁을 하고 하등 소용없는 옷 단장을 했다. 프란츠는 조금 멋쩍어 보였다. 내밀다 만 손이 그랬다. 그는 몇 번의 머뭇거림 끝에 손을 뻗어 알터의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알터의 얼굴이 타오를 듯 붉어진 것을 보고 바람 빠지듯 작게 웃은 게 전부였다. 이번에는 오로지 그뿐이라는 듯 조용히 돌아갔다. 그러니 알터도 의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대체 무슨 연유로 자신을 찾아오는 걸까.
다음에 찾아오시면 여쭤봐야지. 알터는 다짐과 함께 다시 이불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프란츠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 그 어떠한 거리낌도 갖지 않은 채였다. 알반 기사단에 무단으로 침입한 책임을 물을 생각도 않았다. 프란츠 님이라면 분명 생각이 있으시겠지. 어쩌면 알반에서 눈치채지 못한, 에린을 향한 위험을 해결하고 계시는 걸지도 몰랐다. 그게 자신을 매번 찾아오는 이유라기엔 조악한 상상이었으나, 알터는 금세 잠에 들었다. 궁금하다면 질문하면 된다. 알터의 메커니즘은 간단했다. 그러니 빠르게 다음을 기약하고 당장의 현실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날 알터는 프란츠의 꿈을 꿨다.
프란츠가 고개를 숙인 채 무어라 말하는 꿈이었다. 알터는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한참의 침묵 끝, 마침내 고개를 든 프란츠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알터는 꿈에서 깼다.
어쩐지 요즘의 프란츠 님과 닮은 것 같아. 세수를 하며 떠올린 생각이었다. 얼굴의 물기를 완전히 털어낸 알터가 거울의 자신과 시선을 마주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태도의 프란츠. 오묘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프란츠. 입가에 희미한 미소 말고는 그 어떤 표정도 짓지 않는 프란츠. 그리고….
자신에게 할 말이 있어 보이던 프란츠. 알터의 머리에 전구가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어쩌면 요 며칠의 방문이 그 이유 때문이라면? 알터는 내심 그 가설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몇 번이나 와닿았던 시선이 첫 번째 증거였다. 두 번째 증거는, 그러니까…. 감이다. 더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오늘 새벽에 생각했듯, 이것은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해결될 문제였으니.
그러나 그 계획은 속내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발걸음을 끊은 프란츠에 의해 무산되었다. 알터는 애타는 마음에 직접 찾아가려고도 해봤다. 그러나 마침 늘어난 업무량에 자리를 벗어나기도 어려운 상태가 지속됐다. 참 장벽도 많았다. 알터가 숨을 내쉬었다.
프란츠가 방문했던 기간보다 더 많은 날이 지났다. 그렇게 알터의 머릿속에서 피어난 의문들이 하나씩 지워져 가기 시작할 때다.
프란츠가 여느 날과 같이 홀연 듯 나타났다.
그날도 새벽이었다. 알터는 과중했던 업무에 지쳐 숙소에도 가지 못한 채 책상에 엎어져 잠에 들었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스치는 손짓이 아니었다면 알터는 그대로 곯아떨어져 아침 해를 봤을지도 몰랐다.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 시선에 들어온 손은 잠시 멈칫거리더니 금세 거둬졌다. 알터는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올 게 왔구나 싶었다. 며칠 새 사라졌던 궁금증이 마침내 해결될 시간이었다. 알터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프란츠의 곤란한 미소를 다시금 마주했을 때 배시시 나오는 웃음은 멈출 수 없었지만.
“미안해, 깨워서…. 그냥 불편해 보이길래.”
“아니에요, 프란츠 님! 찾아오실 때마다 뵙고 싶은 게 제 욕심인데요.”
그래,라고 대답하는 프란츠의 목이 살짝 메였다. 알터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 때였다. 프란츠가 자리를 뜰 기색을 보였다. 놀란 알터가 프란츠의 손을 잡아채자 프란츠도 똑같이 놀라 어깨가 튀었다.
“죄, 죄송해요, 프란츠 님!”
“아니야…. 왜?”
구름이 달을 가렸다. 고개를 돌린 프란츠의 얼굴이 어둠에 잠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알터의 목뒤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냥 물어보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긴장된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기사의 감은 아니었을까. 알터는 문득 프란츠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프란츠는 여느 때와 같은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짐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함부로 양초를 들이댔다가는 떨어진 촛농에 운명이 바뀔지도 모르니.
알터가 놓친 것은 양초가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함부로 잡아챈 손목을 천천히 놓고 알터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요새 자주 찾아오시잖아요.”
“그랬지.”
잠시간의 침묵 뒤에 프란츠가 덧붙였다. 싫었어? 알터가 펄쩍 뛰면서 고개를 재빠르게 저었다. 그럴 리가요!
“그냥, 오셔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니까.”
횡설수설 질문을 트기 시작할 때 프란츠가 나서서 그의 말을 끊었다.
“이유가 궁금해서 그래?”
아교가 붙은 듯 입을 다문 알터가 고개만 두어 번 끄덕였다. 표정이 보이지 않는 프란츠가 웃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그렇게 짐작한 건 특유의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린 까닭이다. 프란츠가 말했다.
“정말 알고 싶어?”
프시케가 오랜 시간 자신의 연인을 찾아 헤매게 된 것은 잠시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탓이다. 금기를 어긴 탓이다. 에로스의 얼굴에 양초를 들이댄 까닭이다. 알터는 마침내 작게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프란츠는 뚜렷하게 체념했다.
달을 가린 구름이 서서히 움직였다. 프란츠가 고개를 숙였기에 여전히 표정은 보이지 않은 채였다. 프란츠가 무어라 입을 움직였다. 알터가 되물었다. “다시 한번 말해주시겠어요?” 묘한 환상이 겹쳐졌다. 그날 꾸었던 꿈이다. 되풀이되듯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그 꿈은 어떻게 끝났더라?
프란츠가 고개를 들었다. 깨지 않은 꿈의 끝이 이어진다.
“네가 보고 싶어서.”
숨을 곳도 없이 드러난 프란츠의 얼굴은 잔뜩 찡그려져 있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래서, 고작 그것 때문에 알터는 평소처럼 감동이라느니, 프란츠 님이 저를 보고 싶어 해주다니, 노트에 기록해두겠다느니 같은 호들갑을 떨 수가 없었다.
“네가 참을 수 없이 보고 싶어서 왔어.”
프시케는 드러난 에로스의 얼굴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숨겨왔던 모든 것이 양초 하나에 까발려진 에로스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호기심 하나에 들춰낸 진실은 꺼낼 가치가 있었을까.
알터가 숨을 멈췄다.